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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47)
'신라는 중원 복건성ㆍ절강성 지역에 있었다!'
 
황순종 기사입력  2018/03/26 [06:11]

황순종 / 『매국사학의 18가지 거짓말』의 저자

▲ 황순종 『매국사학의 18가지 거짓말』의 저자  
 
이번호에는 신라를 보기로 한다. 현재 우리 모두는 신라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고, 도읍이 경주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여러 기록에서 볼 때 이는 전혀 잘못된 것이다.

신라의 도읍 서라벌이 대륙의 어디였는지 필자가 아직 밝히지 못하는 것은 공부가 부족한 탓이지만, 대충 그 위치는 짐작할 수 있으니 지금 저장(절강)성의 동해에 가까운 곳이었다고 추정된다.

서라벌은 절강성 동해 인근 지역이었다

이렇게 보는 것은 저장성 동해의 ‘임해’라는 지명 때문인데, 임해는 21대 소지마립간 때 “임해와 장령 두 곳에 진영을 설치하여 왜적을 방비하게 하였다.”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임해에 진영을 설치하여 왜적을 방비했다는 것은 임해가 도성인 서라벌에서 매우 가까운 요충지였음을 암시한다. 이는 신라 후기에 ‘임해전(臨海殿)’이라는 기록이 5회나 기록되어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임해전은 서라벌의 궁전과는 달리 정무가 아닌 연회 등의 장소로 이용했다. 그러므로 서라벌의 가까운 동쪽 바닷가인 임해에 별도의 궁전을 세워 연회 등을 베푼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문무왕이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여 당나라와 대항하자, 당에서는 문무왕 대신에 당에 와 있던 그의 아우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삼아 ‘임해군공’으로 봉했다. 임해가 신라의 도읍지나 그에 준하는 중요한 지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반도 경주 동쪽에 임해라는 지명이 있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 반면, 지금 저장(절강)성 동해안에 임해라는 지명이 있다. 그러니 신라의 수도가 한반도 경주가 아닌 저장성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복건성 천주에서 절강성 영파까지 신라의 강역

임해와 함께 신라의 대륙 강역을 보여주는 지명에 천주(泉州)가 있다. 천주는 지금 복건성에 있는 지명인데, 그곳은 진(晉)나라 때 진안군의 신라현이기도 했는데, 『만주원류고』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제번지(諸蕃志)』에, ‘신라는 천주의 해문(海門)과 마주하고 있다. 보통 음양가가 많이 사용하는 나침반에 의한 항해를 꺼려서, 무역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미리 사명(四明)으로 가서 다시 출발한다. 혹은 말하기를 천주의 수위가 점차 낮아져 반드시 사명을 경유해야 한다.’고 하였다.”

신라의 천주에서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명을 거친다고 했다. 사명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 지금의 절강성 영파로서, 임해의 북쪽에 있다.

따라서 복건성 천주에서 절강성 영파 지역에 이르기까지 신라의 강역임을 나타내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그러므로 영파 남쪽의 임해에 신라의 궁전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중원 백제 땅 회복한 신라는 당연히 중원에 있었다

또한, 백제ㆍ고구려와 연결되는 지명에서도 신라가 중원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가 망하기 전에 당나라에서는 소정방을 웅진도대총관으로 삼고, 무열왕(김춘추)을 우이도행군총관으로 삼아 백제를 평정하게 했다. 백제를 치는데 크게 웅진과 우이의 두 길로 쳤다는 것이다.

우이는 옛날 중국의 하나라 초기부터 등장하는 동이족이 살던 지역으로, 지금의 산둥성 임치 일대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백제가 망한 후 문무왕은 백제의 옛 땅을 확보하기 위해 당나라 군사와 수없이 싸워 거의 모두 이김으로써 백제 땅을 차지했는데, 671년에 장군 죽지를 보내 백제 가림성의 벼를 밟아 군량을 없앤 뒤 석성에서 당군과 싸워 이겼고, 다음해에는 고구려 군사와 함께 석문에서 싸워 이겼다고 했다.

이 두 곳은 모두 하베이성 지역에 있다. 『송서(宋書)』의 “백제는 원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천 리에 있었는데, 그 후 고구려는 요동을 공략해 가졌고 백제는 요서를 공략해 가졌다.”라는 기록에서 보듯이 백제가 한반도가 아닌 요동과 요서지역에 있었으니, 이를 되찾은 신라 역시 중원 대륙에 있어야 한다.

요동의 고구려 공격 위해 한반도에서 만났다는 언어도단

666년 당 고종은 이세적을 총수로 삼아 고구려를 정벌하며 신라도 연합군으로 출전했다. 문무왕은 다음 해 8월에 김유신 등 30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도성을 출발하여 9월에 한성정에 이르러 이세적을 기다렸다.

매국사학에서는 한성정을 경기도 광주였다고 설명하나, 이는 언어도단이다.

이세적이 중국대륙에서 출발하여 고구려를 치기 위해 요동 방면으로 가기 전에 만나기 위한 것이므로 그곳은 중국대륙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세적을 만나기 위해 경주로부터 광주로 가서 거기서 바다를 건너갔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륙에서 이세적과 만나기 위해 문무왕이 모든 장군을 거느리고 출발한 곳도 당연히 대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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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26 [06:11]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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