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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봉(형제봉) 아래 섬진강을 지키는 평사리의 ‘하동 고소성’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8/04/06 [09:49]


 
문화재 : 하동 고소성(河東 姑蘇城)
소재지 :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산31번지

 

하동을 여행하는 사람이면 으레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였던 평사리 최참판댁을 찾는다. 섬진강과 넓은 평사리 들과 지리산 신성봉과 고소성 까지 눈여겨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형제봉까지 오르고 싶은 마음의 충동이 온다. 섬진강을 곁에 둔 19번 섬진강대로,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평사리 공원에서 잠시 강바람에 땀을 말리고, 섬진강 백사장에서 뛰놀고 있는 동네 아이들의 뜀박질을 바라보며 동심을 들춰낼 시간이 된다. 조금만 더 가다보면 악양천 물줄기가 악양교 밑을 지나 섬진강에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도 갇는다. 악양 삼거리에서 마을 길을 따라 걷다보면 넓은 들판을 사이에 두고 축지리, 신성리, 신흥리, 정동리, 정서리, 입석리, 봉대리, 평사리가 둘러 자리 잡고 있다. 오붓하게 감싼 들 주변에는 악양천 뿐만 아니라 동대천이 흐르고, 평사리 공원, 동정호, 문암송, 최참판댁, 한산사, 고 소성 등의 문화유산도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확인된다.
 
▲ 고소성에서 본 섬진강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배운면 신암리 찰공산 북쪽 기슭의 상주막이골 데미샘에서 출발한 물이 이곳 평사리 앞을 지나 유유히 남해에 이른다. 장장 225km의 긴 강으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로 굽이쳐 흐르면서, 보성강과 여러 지류와 합쳐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마을에서 본 지리산의 형제봉은 도도하게 흐르는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끼며 바라볼 수 있는 산이다. 성제봉이라고 불리는 이 산은 지리산 남부 능선의 끝자락이 섬진강에 잠기기 전에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멀리 천왕봉에서 촛대봉을 거쳐 비경의 남부 능선을 따라 이어져 온 산세는 비옥한 대지를 빗어내는 형제봉에서 신성봉을 끝으로 섬진강에 잠긴다. 해발 1,108m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흡사하다고 붙어진 봉우리 이름이며, 이 형제봉 기슭에는 소설 ‘토지’의 무대였던 평사리 최참판댁과 들판이 펼쳐지고, 봄철이면 연분홍실 같은 철쭉이 형제봉 능선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진다. 형제봉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섬진강을 넘어 까지도 조망되며, 우리나라 첩첩산중의 끝을 가름할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까지 한다.
 
▲ 고소성에서 본 평사리 전경     


평사리를 비롯한 들판의 가장자리에는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곳곳에 아름다운 수형의 나무가 자라고 있어 전체의 풍경은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자연스러운 멋이 풍긴다. 마을을 돌다 보면 마을의 구성 요소 중 하나가 소나무이다. 마을에서 가장 친숙한 소나무는 마을의 문화를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늘 사랑을 받아온 우리의 나무이다. 축지리 대축마을에 수령 600여 년에 이르는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를 타고 앉아 있다. 이 나무를 문암송이라 부르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9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이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마치 바위에 앉은 신선 같은 느낌을 준다.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의 운암송은 뿌리와 가지, 수세와 수형이 비범한 자태로 각인된다. 물 한 방울 흙 한 줌 없는 메마른 바위 위에서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찬탄을 금할 수 없을 만큼 벅차오른다. 갈라진 바위 가운데서 허공으로 돌출되어 자란 아름드리 뿌리와 붉은색의 표피에 사이사이로 갈라진 틈의 검은 표리골은 나이를 가늠케 한다. 소나무의 높이는 12m에 이르고 굴레는 3m 정도로, 사방으로 가지가 퍼져 동서로 약 17m, 남북으로 12m 정도에 이른다. 옛날에는 시인 묵객이 많이 찾았고, 마을 주민들은 화창한 봄날을 택하여 나무 밑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제사를 지내고 온종일 춤을 추고 노래하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또 다른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이 있는데, 이 소나무를 십일천송이라 부르고 있다. 멀리서 보면 나치 한 그루가 좌우 균형을 이루는 수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11그루의 소나무가 가운데는 높고 좌우 앞뒤가 마치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 소나무는 노천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벌써 살아오는지 120년이 넘게 살고 있는 모습이 오손도손 한 가족이 정다움을 나누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문암송     


평사리 마을에 이르면,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로 유명한 악양면 평사리는 섬진강이 나누어주는 큰 힘을 한 몸에 받는 땅이다.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지명으로 중국에 있는 지명을 옮겨와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다. 평사리 뒷산에 자리한 고소성에서 내려다보면 동정호와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악양루를 세우고, 중국의 소상팔경에 버금가는 풍경에 악양의 소상팔경(악양팔경)을 노래했다. 악양팔경을 소상야우(瀟湘夜雨), 산시청람(山市晴嵐), 원포귀범(遠浦歸帆), 어촌낙조(漁村落照),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한사모종(寒寺暮鐘), 강천모설(江天暮雪) 라 했다. 이 속에 소개된 동정호의 모습은 섬진강과 악양천의 사이에 위치하고, 맑고 아늑한 동정호에 가을 달이 비치며, 섬진강과 동정호 사이에 넓은 백사장이 위치하여 그곳에 많은 기러기가 앉아 있다. 악양천과 동정호의 맑은 물로 몸을 적시던 악양벌은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 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었으며, 조선 후기 우리 민족의 생활 모습을 담은 초가집, 유물 등 드라마 '토지' 세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 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문학마을로써 자리매김할 전망이며 또한 소설 속의 두 주인공을 캐릭터로 개발하여 관광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 한산사     


고소성을 오르기 위해 평사리 한산사를 거쳐 가야 한다. 지리산 남부 능선 끝자락 신선봉과 고소성 아래에 자리 잡은 작은 절이다. 이 사찰은 확실은 자료가 없으나 사찰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따르면, 화엄사(544년)와 창건연대가 비슷하다고 전하고 있으나 사찰의 규모나 주변의 환경에 비춰볼 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사찰로 보이지 않는다. 당시 화엄사 스님이 중국 악양 고소성의 지명이 같은 하동에 사찰을 창건하고 한산사라 부르다가, 이후에 사찰에 빈대가 많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 한산사 후불 탱화     

 
한산사에는 탱화가 있는데 경남문화재자료 제28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에 봉안된 탱화는 영상회상도로 19세기 중엽에 그린 것이다. 석가불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가섭존자, 아난존자 등 18 제자가 석가불을 에워싸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하단에 기립(侍立)한 모습으로 구성하였다. 본래 구례 화엄사 나한전에 봉안되었던 것이며, 해운당 익찬이 증사(證師)로 감독하였고 여러 승려와 신도들의 참여를 통해 제작된 것이다. 대웅전 신중단에 봉안된 신중탱화(神衆幀畵)도 화엄사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19세기 무렵의 것이다. 가운데 위태천을 중심으로 천룡(天龍), 팔부중(八部衆), 사천왕(四天王) 등 불법의 수호신을 그린 것이다. 위태천은 무기 모양의 금강저(金剛杵)를 가슴에 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녹색을 중심 색으로 쓰고 있다. 경내에는 1960년대에 지은 대웅전, 약사전, 삼성각 등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인 장계(張繼)의「풍교야박(楓橋夜泊)」으로 유명해진 중국의 한산사는 서기 502년에 건립된 고찰로 과거에 떨어져 속절없이 귀향길에 오른 장계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마침 한산사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 고소성     


한산사 뒤편으로 오르는 고소성 가는 길은 오르는 높이에 따라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 주변의 산세와 풍경이 조금씩 달리 보인다. 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길이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주변 풍경에 힘든 발걸음이라는 것도 잠시 잊는다. 성상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는 다른 곳에 비교해 유난히 경사가 심하다. 고소성은 신라 때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에서 본 산성의 형태는 가오리 형태를 띠고 있다. 신성봉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갑자기 경기를 이루며 좌우 대각선으로 축성된 성상은 경사진 산세를 따라 좌우로 퍼져 디가 다시 안쪽으로 모이면서 그 모양이 가오리 형태가 된다.
 
▲ 고소성 건물터     

 
언제 축성된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으나 『하동군지』에 의하면 600년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원군인 위병의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구축한 성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5세기 고구려 광개토왕이 남하했을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현재 발굴 조사과정에서 특별한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고, 다만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은 것과 산성의 동·북·서·남면은 성벽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으나, 서남쪽 섬진강을 굽어보는 구간은 거의 허물어져서 돌무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성곽의 형태나 입지적 조건 등을 고려한다면 전쟁을 하기 위한 성보다 섬진강을 따라 오는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는 임무를 띠지 않았나 한다.
 
▲ 고소성 성벽     


그러나 이곳의 옛 지명이 소다사현(小多沙縣)이었고, 『삼국사기』에는 하동의 옛 이름이 한다사군(韓多沙郡)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동군은 ‘큰다사군’, 악양면은 ‘작은다사현’이었다. 『일본서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백제의 진출에 대비하면서 왜(倭)와의 교통을 위해 이곳에 성을 쌓았다 한다. 이러한 자료에서 드러난 내용을 볼 때 고소성은 신라나 백제 때 축성된 성이 아니고 가야의 성으로 추정하는 것이 바르지 않나 생각된다. 고소성은 성벽의 길이는 800m에 이르고, 높이는 1.5~4.5m로,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사다리꼴의 단면을 이루고 있으며, 성문은 남쪽과 북쪽에 각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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