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회·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천의 끝자락 돌원마을 초가(草家) “어재연장군 생가”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8/05/25 [10:11]


 
문화재 : 이천 어재연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27호)
소재지 : 경기 이천시 율면 일생로 897번길 22-47 (산성리)

 

이천시청에서 28km 최남단에 위치한 율면은 동쪽은 이천 장호원읍과 충북 음성군 생극면이 있으며, 서쪽으로 안성시 죽산면, 남쪽으로는 충북 음성군 금왕읍과 생극면이 있고, 북쪽으로는 이천시 설성면과 경계를 이루는 이천시 율면 산성1리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이곳에는 근세 조선말기(고종 8년) 구미 열강에 의해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을 때 서해안을 지키다 강화도 덕포진에서 장렬히 전사한 어재연(1823~1871) 장군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장군은 1823년 2월 이천시 율면 산성1리에서 어용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862년 관계에 진출하여 대구영장이 되고 광양현감, 광양중군, 풍천·장단·회령부사 등을 역임하고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강화영 진무중군이 되어 침공해 온 미국함대의 병력을 막았다. 그러나 무기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조선군 350명과 함께 어재연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이 전사하였다.
 
▲ 어재연장군 생가 전경     


가옥은 송림이 형성되어 있는 구릉의 기슭에 북·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중앙의 마당을 기점으로 안채와 사란 채, 그리고 광채가 둘러싸 있는 튼 ‘ㅁ’자형의 배치구조로 이루어졌다. 경사지에 건물을 축조한 관계로 3~4단의 자연석 기단 높이로 지반을 성토하여 건축 부지를 조성하고, 넓은 바깥마당에 면하여 ‘一’자형의 사랑채를 앉혔으며, 남·서편에 사랑채와 거의 직간으로 ‘一’자형의 광채를 두었다.

안채는 1660년(현종 원년)에 건립되었으나 사랑채와 헛간채, 광채는 모두 19세기말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안채는 사랑채의 뒤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청을 기준은 북·서향하여 ‘ㄱ’자형의 구조로 가옥의 중심에 위치한다. 사랑채 앞의 바깥마당에서 안마당의 진입은 광채의 우측면을 대문간을 만들고, 동선을 꺾어 광채의 우측면을 통해 안마당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들어올 때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게 내와담을 설치하여 전이공간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경기지방 민가의 특징으로 나타나며 안채 모양이 ‘곱패집’ 혹은 ‘곱은자집’이라 불리는 ‘ㄱ’자현 가옥 형태를 보여준다.

이런 형태를 구성 공간의 측면에서 보면 민가를 비롯한 전통 건축 배치방식의 기본개념은 마당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사랑채, 광채, 헛간채를 놓아 단위 영역을 구성하고, 이 단위 영역이 조합되어 전체를 구성하며, 마지막으로 전체 영역의 둘레에 담이나 울을 쳐 하나의 일곽을 형성한다. 이러한 형태는 외부에서 보면 영역 속에서 느껴지는 것보다는 다분히 폐쇄적 구도를 갖는다.
 
▲ 어재연장군 생가 안채     


안채는 7칸 규모로 건넌방 1칸, 대청 2칸 대청을 절점으로 ‘ㄱ’자형으로 꺾이어 안방 2칸, 부엌 1칸, 광 1칸으로 이루어졌으며, 안방과 대청, 그리고 건넌방에는 헛기둥을 세워 받침을 설치하였다. 사랑채는 정면과 배면에 툇간이 있는 도리방향 4칸짜리 전·후퇴집 좌측에 도리방향 2칸짜리 홑집(외통집)을 연결하여 ‘一’자형으로 구성한 7칸 규모의 크기로 두 건물 사이에 1.6m의 간격을 두고 서로 이격시켰으며, 높이가 다른 두 건물의 지붕은 층지게 하여 지붕을 서로 연결시켰다. 남측 면부터 1칸의 대청, 2칸 사랑방, 1칸 부엌, 그리고 3칸 정도의 창고를 배치하였다. 광채는 도리방향 4칸, 보방향 2칸의 겹집(양통집)으로 평면 구성하였고 바깥마당과 면한 전면의 우퇴칸에는 대문간을, 남측 칸에는 문간방을 배치하였다. 전면 우협 칸에는 우물마루를 설치한 고방을, 남측 칸에는 하부에 아궁이가 있는 다락을 두었다. 나머지 2x2칸은 광으로 사용토록 하였다. 그 외 안채 북편에는 2칸의 뒷간을 두었다.
안채 배면 뒤뜰은 석축을 쌓아 층단지게 하였고, 광채 모서리를 기점으로 뒷간에 이르는 구역에 토담을 둘러 집안을 둘러싼 공간을 두었다.
 
▲ 어재연장군 생가 안마당     


평면상의 안채는 좌측면에 부엌, 안방이 위치하며, 꺾어져 대청과 건넌방이 위치하고 있다. 기단은 2단 정도의 높이로 막돌 쌓기로 하였고 기단 상부 면은 생석회다짐으로 마감하였다. 안방에서 출입하는 문은 4곳이며, 대청과 면하는 곳에는 외여닫이 세살청판분합문을 달았고, 정면 좌측부에는 쌍여닫이 세살문인 쌍창, 쌍미닫이 완자살분합문으로 된 영창과 두껍닫이로 구성된 두 겹의 문을 달았다. 좌측면에는 각 칸마다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건넌방은 반침을 설치하였고 반침하부에는 까치발을 달았다. 반침 하부에는 건넌방의 난방을 담당하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고 반대편에는 굴뚝을 설치하였다. 창호는 대청으로 나 있는 외여닫이 세살분합문과 외부와 직접 출입할 수 있도록 건넌방 우측면에 쌍창, 영창, 갑창으로 구성된 두 겹의 문을 달았다. 대청은 우물마루를 설치하였고, 대청 배면 우측칸 상인방 상부에는 벽감을 설치하였고 하부에는 외여닫이 세살문을 두었다. 좌측에도 외여닫이 세살문을 두어 외부와 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대들보 아래에는 새로재 띠장을 걸고 시렁가래를 끼워 시렁을 만들었다. 부엌과 광은 칸막이를 설치하지 않고 개방된 상태이다. 부엌과 안방이 면하는 벽체에 외여닫이 세살문을 내어 안방과의 동선 연결을 도모하였다. 배면과 정면 좌측 칸에는 쌍여닫이 널판 문을 달아 외부와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부뚜막 우측면에는 환기의 목적으로 가로대에 세로 살을 끼운 사롱창을 두었다. 안채의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한 덤벙 주초로 전체적인 초석의 크기는 일관성을 갖지 않고 그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안채의 지붕은 볏짚을 이용하여 사슬이엉 잇기 법으로 처마부분이엉의 맨 아랫단만 볏짚의 밑동부분이 아래로 향하도록 설치하여 처마의 처짐을 방지하고 외관상으로 보기 좋게 하였다. 용마루는 ‘ㅅ’자 모양으로 엮는 용마름 엮기는 지붕 꼭대기 중간의 용마루에만 설치하였다.
 
▲ 어재연장군 생가 사랑채    


사랑채는 허튼층쌓기로 2단 정도 높이의 기단을 설치하고 도리방향 6칸 반 정도 크기의 건물을 앉혔다. 초석은 자연석 그대로 사용한 덤벙주초와 서측면 외진평주 초석처럼 후설 된 듯한 2칸은 창고를 두었다. 정면과 배면 툇간의 구성은 정명의 경우 우측면 3칸만을 툇간으로 하였고. 배면은 툇마루로 구성하고 툇마루의 좌측면에는 방을, 우측면은 양쪽 측벽을 막아 부엌의 전실과 같이 되었다. 부엌의 상부에는 다락방이 있고 사랑방에서 출입이 가능하고, 사랑방에는 반침을 두었다. 대청과 툇마루는 장귀틀과 동귀틀에 청판을 끼운 우물마루를 깔고, 대청 배면의 방은 온돌방을 두었다. 사랑방을 드나들 수 있는 문은 각 칸에 두껍닫이가 있는 쌍창이 있고 나머지 대청과 툇마루 등으로 출입하는 모든 공간에는 외여닫이문을 달아 동선을 연결하였다. 좌측의 창고는 문을 달지 않고 개방된 상태이고, 우측 칸은 널판 문을 달았다. 기둥 가운데 있는 상인방을 기준으로 하부는 화방벽으로 하였다. 부엌은 안마당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랑방과 대청 후면에 있는 방의 천정은 모두 종이반자를 하였고, 대청과 창고, 부엌 등의 천정은 서까래가 노출되어 있는 연등천장으로 하였다.

특히 사랑채의 처마가 매우 특이하다. 우측면 처마에는 추녀가 4개가 설치되었는데, 양 중도리 왕찌 부분에 각 1개씩, 그리고 양 주심도리 왕찌 부분에 각 하나씩 배치하였다. 3가량 형식의 추녀 및 처마 형태 변경 없이, 추가적으로 양 외진평주 상부에 다시 추녀를 덧걸어 측면 첨마를 구성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를 갖게 하였다. 사랑채의 지붕도 안채의 지붕과 같이 오랫동안 사슬이엉 잇기법으로 하였고, 용마루 부분에는 용마름이 얹어져 지붕의 형태의 갖추었다. 몇 해 동안 쌓여있는 이엉은 걷어내지 않고 있어 추녀를 따라 둘러진 이엉이 층층이 쌓여 있는 것이 초가의 정감을 느끼게 한다. 사랑채에 사용된 창호는 두 짝의 영쌍창과 사랑방과 대청방 정면, 그리고 다락방으로 통하는 곳에는 외여닫이 세설문을 달았다. 대청방에서 사랑방에서 대청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외여닫이 만살문을 달았다. 사랑방 내부 반침과 다락방 배면에는 만살창을 달았다.
 
▲ 어재연장군 생가 광채     


광채는 자연석 두벌대 쌓은 기단을 마련하고 지형에 맞추어 경사지게 쌓았다. 남서측면에 위치하고 있는 광채는 생가의 주출입구인 대문간이 우측면 전 툇간에 위치한다. 일자형 평면에 도리방향 4칸, 보방향 2칸이 겹집으로, 우진각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벽체의 좌측면과 배면의 상인방 하부에는 화방벽을 설치하고 나머지 벽은 심벽 위에 재사미장 마감하였다. 지붕의 이엉 잇기 수법은 안채와 사랑채와 동일한 방법으로 마감하였다. 대문은 띠장에 널판문을 짠 쌍여닫이 널판문을 달았고, 문간방 정면과 배면에는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고, 고방과 광에는 쌍여닫이 널판문을 달았다. 다락 배면에는 쌍여닫이 만살창과 사롱창을 달았다.
 
▲ 어재연장군 생가 담장     


화장실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우진각 초가지붕이며, 좌측 칸은 화장실, 우측 칸은 창고로 이용하고 있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외벌대 기단을 축조하고, 기단 상부는 강회다짐으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고 상부에 사모기둥을 세웠다.
 
▲ 어재연장군 생가 쌍충연     


생가는 완전한 ‘ㅁ’자 형태의 구조에 가까우면서 어딘가 어긋나 있는 모습이다. 안채의 ‘ㄱ’자의 안채는 꺾인 구조로 경기지방에서 흔히 접해볼 수 있고 사랑채도 마찬가지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ㄷ자를 이루지만, 광채는 사랑채의 안쪽 추녀 끝선과 안채 추녀 끝선에 맞추려 보니까 사랑채 쪽은 밖으로 나와 있고 안채 쪽은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완전한 ‘ㅁ’자 모습을 잃었다. 하지만, 집 주인은 집을 지으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허전함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 어재연장군 생가 느티나무     


생가의 입구에는 200살이나 된 느티나무 한 그루와 어재연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의 호국의지와 충성심을 기리고자 조성된 연못이 있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8/05/25 [10:11]  최종편집: ⓒ wngo
저작권자(c)한국엔지오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