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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의 설악 천태산이 품은 ‘영국사’(2)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8/06/15 [10:03]


문화재 : 영동 영국사 승탑(보물 제532호)
            영동 영국사 석종형승탑 (충북유형문화재 제184호)
            영동 영국사 구형승탑(충북유형문화재 제185호) 
            영동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소재지 :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산139-1번지

 

국청사는 고려 명종 때인 12세기에 원각국사에 의해 중창이 있었고 고려 고종 때 안종필이 임금의 명을 받아 탑과 승탑, 그리고 금당을 새로 지었다. 공민왕에 의해 영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대웅전에서 서남쪽으로 약 200m에 이르는 지점의 능선에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 원당 형을 따르는 승탑 한 기가 있다. 이 승탑은 천태학 승려였던 원각국사 덕소(德素, 1119∼1174)를 기리기 위해 세운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와 연관된 승탑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아울러 승탑의 건립 시기는 비가 세워진 1180년(명종 10)경으로 보고 있다.
 
▲ 영국사 승탑     


높이 1.7m의 승탑은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로 나누어지며 전체적으로 팔각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맨 아래 바닥 돌부터 보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부재가 온전한 상태로 유지됐다. 단면 8각의 바닥 돌 윗면에는 1단의 높은 굄과 2단의 낮고 각진 받침을 새겨 아래 받침돌을 받치게 하였다. 아래 받침돌 옆면에는 면마다 가늘고 긴 측 연화문이 하나씩 조각되어 있다.
아래 받침돌 위에는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8각의 굄이 놓이고, 굄의 밑면에는 낮고 각진 1단의 굄이 새겨져 있다. 윗면에는 각진 3단 받침이 크기가 줄어들면서 새겨져 있다. 8각의 가운데 받침돌도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각 면에는 1구씩 측 연화문이 얕게 오목새김 되었다.
 
각 면에 새겨진 측 연화문은 眼象(안상)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연기문이라고 부르는데, 저자는 이 문양을 연꽃을 측면에서 보았을 때의 모습을 단면으로 새겨 놓은 것으로 ‘측 연화문’이라 이름 하였다. ‘안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본의 미술사학자인 이시다(石田茂作) 씨가 ‘牙床’이란 명칭과 ‘牙象’이란 용어를 병행하여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상다리에 장식 혹은 보강 목적으로 부가된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써, 두 용어를 모두 음독하여 게쇼(ge-sho) 혹은 겐쇼(gen-sho)라고 읽었다. 그런데 후지와라(藤原)시대 말기부터 같은 음과 같은 글자로 眼象이란 한자식 표기가 등장하는데 발음이 이상의 두 용어와 같은 gen-sho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眼象(안상)은 뜻이 아무것도 없는 일본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연기문’이라 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승탑이나 석탑에 나타나 있는 ‘측 연화문’은 불교를 상징문양으로, 불교 성립 후 불교 교리를 설명하는데 적절하게 쓰여 왔고, 인도의 토속신앙에서는 연꽃이 빛과 생명의 상징이었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도 항상 깨끗함을 유지한다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순결과 자비와 인욕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아미타경에서 연꽃은 극락정토를 상징한다. 극락정토는 연꽃으로 장엄한 아미타여래의 세계다. 화엄경에서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도 부처의 세계다. 관음보살의 연꽃은 불성(佛性)을 의미한다. 연경(蓮境)이니 연사(蓮舍)는 절을 나타낸다. 아울러 연꽃문양의 수레바퀴 모양은 불교의 윤회 사상을 상징한다. 연화문은 사찰건축이나 불상 조각, 불구, 불화 등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승탑의 각 면에 새겨진 연화문은 연꽃이 피었을 때 측면에서 본 연꽃을 표현해 놓은 것은 위쪽의 앙련의 의미와도 다를 바 없다. 위 받침돌은 단면이 원에 가깝게 만들어졌으며 밑면에는 단면 8각의 받침이 2단으로 새겨져 있는데 아래 것은 좁고 위의 것은 높고 밖으로 더 나와 있다. 옆면은 연꽃잎이 위로 향해 솟은 앙련으로 위아래에 24 꽃잎이 겹쳐 돋을새김 하여 화사하게 꾸몄고 윗면에는 가장자리에 띠를 두르고 가운데 부분은 3단의 굄을 두었다.

몸돌은 단면이 8각으로 이루어졌으며, 면마다 모서리에 우주를 모각하였다. 한 면에만 길고 네모난 문비를 새겼는데, 안의 약간 위쪽에 자물쇠를 돋을새김 하였다. 문비는 점차 탑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감실로 드나들 수 없게 되면서 내부 공간에 감실을 만들고 감실 속에 불상을 모시는 형태로 변했다. 점차 탑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감실의 규모도 작아지고, 감실을 만드는 대신 탑의 몸돌에 문비 표시만 하게 되었다. 이것은 부처를 모시는 방을 표현한 것으로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석탑이 아닌 승탑에도 문비가 있다는 것은 스님의 사리가 이곳에 있음을 표시한 것으로 보면 된다.

지붕돌은 팔각으로 밑면에 위 받침돌 윗면의 굄과 대칭이 되도록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추녀에는 모서리마다 무늬를 새겨 넣었고, 낙수면의 합각선은 꼭대기에서 유려한 곡선을 이루면서 전각까지 흘렀다. 면마다 기왓골이 가지런히 조각되었는데, 처마의 곡선이나 전각의 반전 등과 잘 어울려서 경쾌한 느낌을 준다. 꼭대기 부분에는 8각으로 된 상륜 굄을 새기고, 위에 복발과 보주 등으로 상륜부를 장식하였다. 복발과 보주는 둥근 공 모양으로, 복발에는 옆면 가운데 부분에 굵은 선과 가는 선으로 된 2줄의 선이 둘려 있고, 연꽃봉오리 모양으로 만든 보주의 밑면에는 낮은 굄이 있다.
 
▲ 영국사 석종형승탑     


원각국사비 뒤쪽에 석종형 승탑이 자리하고 있다. 몸돌에 주인공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정확한 연대 등도 알 수 없다. 승탑의 구조는 네모난 바닥 돌 위에 마련된 기단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으며 8각이다. 기단의 가운데 받침돌을 제외한 아래·위 받침돌에는 각각 홑잎의 복련과 앙련을 새겼다. 가운데 받침석에는 면마다 네모 창 모양으로 조각하였고 모서리마다 기둥을 모각하였다. 위 받침석의 넓은 부분의 중앙에 종 모양의 몸돌을 올렸다. 몸돌의 상륜부에는 종을 매달 때 쓰이는 고리를 떠올리게 하여 실제의 종과 비슷하게 하였다. 이러한 승탑의 형태는 매우 독특한 구조이다.
 
▲ 영국사 구형승탑     


석종형 승탑 바로 앞에는 구형 승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승탑도 몸돌이 주인공이 기록되지 않아 정확한 연대 등도 알 수 없다. 승탑은 네모난 바닥 돌 위에 8각의 아래 받침돌을 세우고 8각의 위 받침돌을 올려놓은 구조이다. 아래 받침돌은 면마다 문양을 새기고, 위가 반듯한 위 받침돌은 밑에서 한 겹씩의 연화문을 돌렸다. 몸돌은 둥근 공 모양이며, 지붕돌은 8각이며, 기와 등의 조각은 생략되어 밋밋하면서 투박한 느낌을 받는다. 지붕돌 위에는 꽃봉오리모략의 모주로 장식하였다. 이러한 승탑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고 있다.
 
▲ 망탑봉 삼층석탑     


경내에 있는 문화재를 돌아본 후 왔던 길로 다시 나가기 위해 일주문 앞 매표소에 이르면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약 200m 거리에 속칭 망탑봉이라는 작은 봉우리가 있고, 정상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주변에는 동물 형상의 바위가 3개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은 잔잔한 물결이 밀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발아래에는 삼단폭포가 흐르고 천태산의 두 물줄기가 합쳐져 폭포를 만들어 내는 곳이기도 하다. 망탑봉이란 이름은 언제부터 부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찰에서나 마을에서도 같이 부르고 있다. 옛날에는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당간에 당기를 달아 알렸다. 영국사에는 당간을 세운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멀리서도 천태산 아래 영국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망탑봉에 석탑을 건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화강 암박 위에 또 다른 큰 바위가 석탑을 받쳐주는 기단이 되어 있다. 암석 상면을 평평히 다듬고 자연암을 그대로 기단을 마련함으로써 3층 석탑이면서 주위 어디서도 볼 수 있는 석탑이기도 하다. 암반 꼭대기 중앙 돌출된 부분을 다듬어 네모난 기단을 조성하고. 다듬은 암상에 2단의 높직한 각형 받침을 각출하고 그 위에 면석을 조성하였다.

초 층 지붕돌은 지붕 받침이 5단이며 하부 3단은 별석으로 만들어졌다. 추녀는 직선이고 낙수 면이 평박한 편이다. 전각이 반전되었으나 풍경공은 두지 않았다. 정면(頂面)에는 각형 1단의 몸돌 받침이 각출 되었고 그 위의 2층 몸돌 하단에 새겨진 1단의 각형 받침과 겹쳐서 마치 2단의 받침을 말려 난 것처럼 보인다. 2층 지붕돌은 받침이 4단이며 정면에 몸돌 굄 1단이 각형으로 조출되었고, 그 위의 3층 몸돌에는 양 우주 외에 아무런 조식이 없다. 3층 지붕돌은 받침이 4단이고 정면에 각형의 노반 받침이 1단 각출 되었으며, 그 상면 중앙에는 둥근 찰 주공이 만들어져 있다. 현재 노반 석은 결실되고, 1석으로 조성된 연봉형의 보주가 놓여 있다. 각 층 지붕돌의 낙수 면이 평박하고 네 귀퉁이의 전각에도 반전이 뚜렷하여 경쾌하다. 각층 몸돌의 상부가 좁혀졌으므로 석탑 전체의 형태는 안정감이 있으며 더욱 단정하다.

기단을 한 층으로 하고 기단의 맨 윗돌을 생략하는 등 부분적으로 간략화 된 고려석탑의 유형을 보여주며, 각 부재의 양식과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인 12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 망탑봉 상어바위     


망탑봉 석탑 주변 3개의 바위는 상어를 연상케 하는 바위와 바다의 군소를 연상케 하는 바위, 거북이가 물을 찾아가는 모습의 바위가 삼층석탑과 어우러져 천태산의 경관 중심에 있다.
 
▲ 망탑봉 거북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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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15 [10:03]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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