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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를 지켜온 주역 ‘울릉도 향나무‘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8/10/19 [10:48]


 
문화재 : 울릉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 (천연기념물 제48호)
            울릉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 (천연기념물 제49호)
소재지 : 경북 울릉군 서면 남양리 산 70번지 외


 
울릉도는 화산이 만들어낸 걸작의 섬이다. 여객선을 타고 둘러보아도, 발품을 팔아서 둘러보아도 이보다 더 나은 작품이 어디 있을까 비교가 된다. 오래전부터 시인 묵객이 울릉도를 찾았더라면 수많은 글을 남기고 화폭에 자연을 담았을 것이다. 비워두고 싶었던 섬, 골치 아팠던 섬, 어디 한 곳 변변히 살아갈 수 있는 넓은 들도 없고 풍랑을 피해 정박할 수 있는 해변도 넉넉지 않았던 섬이었다. 기암절벽이 경이로운 이질감과 위압감을 함께 주는 섬이다.

그러나 울릉도는 이미 철기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삼국지에 위나라 장군 왕기가 옥저로 도망친 동천왕을 추적하다가 어떤 노인에게서 “바다 동쪽에 섬이 하나 있다”는 소문을 듣기에, 이것이 역사상 울릉도의 첫 등장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후 울릉도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우산국이라는 독자적 정치체가 자리를 잡았지만, 신라 지증왕(512년) 때 하슬라주 군주 이사부가 정벌하게 된다. 신라에 복속된 우산국은 후삼국 시대를 맞아 우릉도(芋陵島)에 독자적인 세력이 자리를 잡아 930년 고려에 백길(白吉)과 땅콩 토두(土豆)라는 사람을 보내 조공을 바치고 관직을 받았다. 그러나 울릉도는 평탄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여진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주민들은 울진군 지역으로 이주했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공도 정책으로 울릉도에 사람이 살지 못하고 모두 육지로 이주함으로써 울릉도는 텅 비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공도 정책은 1881년에 일본인이 울릉도에 몰래 들어와 산을 돌아다니며 벌목을 시작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임오군란이 수습된 직후 울릉도 개척 방안을 공표해 김석규(金錫奎)를 도장(島長)으로 임명하고 5년간 면세 조치를 시행하였다. 1883년에는 김옥균(金玉均)을 개척사(開拓使)로 임명하면서 울릉도 개척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울릉도 이주 정책과 토지 개간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지속적인 항의를 통해 울릉도에 불법 침입해 벌목을 자행하던 일본인 254명을 그해 9월 모두 본국으로 송환하였다. 하지만 아관파천과 더불어 울릉도의 삼림 벌채권이 러시아로 넘어갔고, 청일전쟁 이후에는 다시 일본인의 벌목이 자행되었다.
 
▲ 도동 향나무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섰지만, 일본인의 벌목 자행은 울릉도를 더욱 멍들게 하였다. 그래도 울릉도는 숲이 지켜오고 숲이 아름다운 섬을 만들어 놓았다. 깎아지른 절벽에 흙 한 줌 없는 사막보다 더 어려운 환경 조건을 이겨내며 푸른 잎을 내밀고 꽃을 피워 살아가는 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은 울릉도를 지켜왔던 사람들의 아픔과도 같다.

포항에서, 묵호, 강릉에서 관광객을 태우고 도동항에 입항하면 깎아지른 절벽에 짙은 녹색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을 하지 않는 관광객이 없다. 험준한 절벽에 푸름을 자랑하며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일반적 서식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에 비해 키도 작고 수형도 갖추지 못하는 나무들이다.
 
▲ 도동 향나무     


울릉도의 오다(五多)에도 바람, 돌, 물, 미인과 함께 향나무가 들어 있다. 울릉도를 돌아보면 자주 만나는 나무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해안 도로를 따라 움직여보면 절벽에 매달려있는 향나무를 볼 수 있고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오르고 다시 도동항에서 내수전, 천부방향으로 걸어보면 너도밤나무, 동백나무, 솔송나무, 섬피나무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너도밤나무는 향나무와 달리 깎아지른 절벽보다 여러 나무가 어우러져 숲을 이루며 곧게 자라고 있다.
도동항에서 고개를 들고 우측을 바라보면 몸은 비틀어 올라가며 가지 끝에 겨우 남겨 놓은 이파리를 보고 아직 살아있는 향나무가 신기하듯 지켜본다. 보는 사람에 따라 보는 눈과 생각이 모두 다르다. 이 향나무가 울릉도에 향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지만, 울릉도를 지켜온 나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2,500년을 살아왔다고 하니 아직도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하는 염려스러움이 먼저 앞선다.

향나무의 학명은 Juniperus chinensis L.이다. 속명인 Juniperus는 겔트어로 ‘거칠다’라는 뜻이다. 잎이 뾰족하여 거칠게 느꼈다. ‘젊음’을 의미하는 라틴어 주베니스(juvenis)와 ‘생산, 분만’을 의미하는 페리오(perio)에서 연유했으며 낙태제로 쓰였다 한다.
 
▲ 울릉도 해안의 향나무     


향나무는 늘 푸른 바늘잎나무로 정상으로 자라면 약 25m에 이른다. 울릉도 해안 절벽에 자라는 향나무는 자랄 수 없는 환경을 가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해풍이 불고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린다. 겨울철 나무에 내린 눈은 중압감을 주어 곧게 자라고 싶어도 자랄 수 없다. 해풍이 불어와 봄에 나오는 새순은 심하게 흔들려 성장을 억제한다. 비가 내리든 눈이 내려 녹든 빗물은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바로 흘러내리고 배수가 된다. 울릉도 향나무는 밤이슬을 흡수하며 살아야 한다. 하루에 필요한 양의 수분을 흡수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스스로 수분의 흡수를 조절해야 한다. 10대 원소를 다 흡수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자라는 것도 한계를 둔다. 2,500년이나 살아온 향나무의 높이는 어른 키 정도에 이를 정도이다. 향나무는 넘쳐 버려야 할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 성장을 하므로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것 같다.
 
▲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     


온몸에서 향기가 풍겨나 향나무라 부르고, 오래 사는 나무이다. 나무껍질은 회갈색 또는 흑갈색, 적갈색으로 오래 나이가 들면 세로로 얕게 갈라진다. 잎은 바늘잎과 비늘잎 두 가지가 달리는데, 어린 가지는 바늘잎이 달리고, 묵은 가지에는 부드러운 비늘잎이 달린다. 암수딴그루로 4월이면 꽃이 피는데 수꽃은 가지 끝에 달리고 노란색을 띠며 타원형이고, 암꽃은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동그랗게 달린다. 10월이면 녹색의 열매가 점차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으로 여물면서 벌어지고 열매 속에 2~3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     


향나무의 수형은 나사처럼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자란다. 그래서 향나무는 향불의 연기가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향나무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의 힘이 있다 하여 궁궐이나 신분이 높은 집안의 정원, 사찰에서 심었다. 또한 청정(淸淨)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다. 향나무는 향료로 널리 쓰이기 때문에 굵어지면 베어 버린다. 그래서 수 백 년 된 향내를 보기 어려우며, 향기가 구천의 높이까지 간다고 한다. 그 향기를 타고 하늘에 계시던 영혼이 내려온다고 옛사람들은 믿어왔다. 그래서 제사 때 향불을 피운다. 나무는 곧게 자라면 죄악이며 죽음의 선이라 했다.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고 직선은 악마가 만든 선이라 했다. 울릉도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향나무는 모두 신이 만든 나무이다.
 
▲ 통구미 향나무 자생 거북바위지     


울릉도에는 향나무 군락지가 2곳이 있다. 한 곳은 서면 남양리의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이고 또 한 곳은 태하리의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이다.  ’통구미‘라는 명칭은 거북바위가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형태이어서 거북이가 들어가는 통과 같다 하여 통구미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을 양쪽으로는 높은 산이 솟아 있어 골짜기가 깊고 좁아 마치 홈통과 같다고 해서 ’통’과 구미(구멍)를 따 통구미라 부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는 남양리 마을 뒤 급경사를 이루는 암벽 틈새에 자라고 있는 향나무 군락지이다. 이곳의 향나무는 해안을 따라 바위 틈새에 자라고 있는 향나무와는 다르지 않지만, 특히 향나무 본래의 원종(原種) 그대로 잘 보존된 곳이다. 서로 인접해 있는 향나무는 외부적 환경요인에 의해 높이 자라는 것보다 환경에 걸맞게 적당한 크기에 부피감을 키우고 있어 마치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고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울려 있다. 원래 이곳에는 이보다 더 큰 향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자행한 불법 벌채와 향나무 가공을 위해 크고 기이한 수형을 가졌던 향나무를 모조리 벌목해 가고 급경사에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나무와 어린나무만을 남겨 놓은 것이 지금의 향나무로 성장하였다. 특수한 환경에 적응된 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사람들에 의한 무분별한 훼손을 막고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     


향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 아래에 자라는 다른 수종과 완전히 구분 지어 있으며, 날카롭게 해안을 향해있는 바위의 형상에 늘 푸른 향나무는 변함이 없다. 특히 향나무 자생지는 해식애와 파식대가 잘 발달하여 있으며, 해안이 파랑에 직접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형의 형태는 전형적인 타포니 경관도 보인다. 앞의 거북바위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바위로 울릉도 관광코스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     


또 한 곳인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는 태하리 북서쪽 해변 끝에 있으며, 인위적 접근이 어려운 곳에 향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전체의 모습을 보려면 배를 이용하여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태하리에서 모노레일을 이용해 등대에 오르면 전망대가 있어 좀 더 가까이에서 한쪽 면에 자생하고 있는 향나무를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울릉도에는 배를 만들기에 알맞은 나무가 있어 낡은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새 배를 만들어 돛을 높이 달고 육지로 가는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는데 이때 바위 구멍에 닻줄을 매어 놓고 기다린다고 하여 대풍감(待風坎)이라 부르게 되었다. 배를 띄워 육지로 갈 수 있을 만큼의 바람이 불면 닻줄을 끊어 한달음에 육지까지 갔다고 한다. 대풍감의 향나무는 1903년까지 군청 소재지가 태하리에 있었는데 이때 대풍감의 향나무를 관리 감시하는 덕분에 오늘날의 향나무 군락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퉁구미와 대풍감 외에도 울릉도의 해안가 절벽이나 부속 섬인 관음도, 삼선암 등에도 적지 않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으며, 험준한 지형 탓에 향나무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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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9 [10:48]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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