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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암이 만들어 놓은 백령도의 문화유산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8/10/26 [10:02]


문화재 : 백령도 두무진(명승 제8호)
           백령도 콩돌해안(천연기념물 제392호)
           사곶 사빈(천연기념물 제391호)
소재지 :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 외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서해의 가장 북서쪽에 있으며, 15번째로 넓은 섬으로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의 한 섬이다. 육지에서 백령도를 가기 위해서는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에 승선하여 4시간의 여정 끝에 도착하는 섬이다. 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이지만,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섬사람들은 섬을 지키기 위해 하루도 편한 날 없이 분단의 아픔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간다. 백령도는 선사시대부터 농경과 어로를 하며 사람이 살아왔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 땅으로 곡도(鵠島, 따오기섬)라고 불렀으나 신라의 영토가 되면서 한주 장구진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 때 백령진이 되어 '백령'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고려의 장수 유금필, 최충원의 외조카인 박진재와 정주 분도장군인 김경손의 유배지로 당시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었던 최악의 귀양지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1428년에 황해도 장연군에 속했었다. 현재는 옹진군에 속한 섬으로 서해 5도의 일부이자 5개 섬 중에 가장 큰 섬이다. 북한 황해도 장산곶에서 불과 17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휴전선과 가깝다는 이유로 아직 태초의 신비와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무공해 섬이다.
 
▲ 콩돌해변     


백령도 선착장에서 하선하여 바로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백령도에 있는 문화재와 대청도의 동백나무숲을 찾기로 하였다. 가장 먼저 남포리에 있는 콩돌해안을 찾았다.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해안에는 모래가 아닌 조그마한 자갈로 이루어진 해안이 있는데. 이 해변을 ‘콩돌해변’이라 한다. 크고 작은 콩알 모양의 둥근 자갈은 모양과 색깔이 같은 것이 없이 형형색색으로 서로 몸을 비벼대고 있다. 해변은 약 800m 길이에 이르는데, 이것은 해안 양 끝에서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잘게 부서진 돌이 파도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

규암의 성분은 석영(SiO2)이다. 석영의 주성분인 사암이나 처트 등이 광역변성작용이나 열변성작용에 의해 생기는 광물로 모래를 구성했던 다량의 석영 입자가 치밀하게 재결정하면서 덧자라서 암석이 치밀해지고 단단해진 것이 규암이다. 흔히 차돌이라 부르는 돌이 규암이다.
 
▲ 콩돌해변     


규암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규암이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잘게 부서지고, 부서진 바위 조각들이 해안선 근처에서 파도가 반복적으로 밀려오고 빠지면서 서로 부딪쳐 모서리가 마모되는 현상이 반복되어 오늘날처럼 둥글게 마모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해변을 만든 작은 차돌은 평균 크기가 약 2cm에서 4cm로 세립자갈에서 큰 자갈까지 펼쳐져 있다. 닳고 닳은 차돌 표면은 반질반질하며 파도가 밀려왔다 지나간 자리의 자갈은 더욱 빛이 나고 윤기가 돈다. 반질반질한 자갈은 흰색도 있지만, 갈색, 보라색, 검은색 매우 다양한 색상과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도 같은 무늬를 가지고 있다. 파도가 들어올 때의 소리와 빠질 때의 소리는 다르다. 파도가 밀려올 때는 파도의 몸부림치며 자갈의 숨소리를 덮어 차돌의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물이 빠질 때면 물이 자갈 틈새로 빠지는 소리와 자갈들의 목욕하는 소리, 자갈들이 밀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소리까지 합쳐져 “쏴!” 하는 소리를 낸다.

규암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 두무진으로 향했다. 두무진은 백령도의 서북쪽에 있는 포구가 두무진이다. 이곳에 뾰족한 바위들이 마치 장군의 머리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어진 지명이다. 두무진은 한마디로 태초의 신비와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무공해 섬이다. 지도를 펼쳐놓으면 마치 새 한 마리가 북쪽 장산곶을 향해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새의 머리 부분이 두무진이다.
 
▲ 두무진     


우람하게 치솟아 있는 기암괴석은 약 4km의 해안선을 따라 줄을 선 듯하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마다 이름을 주었는데,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형제바위, 신선대, 촛대바위, 선대암 등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서 있다. 바위의 형태는 다르지만, 바위가 가진 성질이 같은 규암으로 이루어졌다. 읽을 책, 읽은 책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하고 시루에 쌀가루와 팥을 차곡차곡 깔아놓은 것처럼 옆으로 난 줄무늬가 뚜렷한 규암의 참 멋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게 쌓아 올린 규암의 두께가 무려 350~500m에 이르는데, 이렇게 형성된 것은 10억 년 전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얕은 바닷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두무진 규암은 층리가 수평으로 퇴적된 뒤 단층작용 외는 심한 변형을 받지 않아 퇴적구조가 잘 드러나 있어 당시 퇴적환경을 엿볼 수 있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면 일반적인 입자가 고운 점토와 셰일은 해류를 따라 밀려 나갈 수 있지만 굵은 모래나 자갈은 무거워 해안가에 쌓인다. 전체적인 규암을 볼 때 아래쪽 퇴적물이 위쪽보다 가는 세립질이므로 아래쪽은 만 바다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데 반해 위쪽은 해안가에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해안선이 점점 후퇴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뿐만 아니라 퇴적층이 4.5~5m 간격을 두고 색이 다른 띠 모양의 층이 보이는데 이것은 해수면이 주기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색이 짙게 보이는 층은 퇴적물이 습한 환경에서 쌓였음을 암시하고 색이 옅은 층은 물이 빠져 건조한 환경에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퇴적층에는 파도와 조수의 영향으로 물의 움직임에 의해 퇴적물의 표면에 형성되는 파상의 흔적인 연흔(漣痕)도 보인다.
 
▲ 두무진     


이러한 일련의 지층의 모양은 땅속에 묻혀있던 퇴적층 지반이 상승하면서 물 위로 드러났고 뒤이어 파도와 비바람이 단층과 절리면을 깎아내리면서 지금과 같은 기이한 형상의 두무진이 생겼고, 이러한 바위의 모양이 머리털 같이 뾰족하다고 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불러오다가 훗날 사람들은 머리털보다 장군들이 줄지어서 서 있는 것 같다 하여 두무진이라 부르게 되었다.

두무진의 절경에 조선 광해군 때 의병장이었던 이대기(李大期, 1551~1628)는 그의 저서 『백령지(白翎志)』에서 선대바위를 보고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기암절벽들이 마치 장군들이 모여 회의하는 모습 같아하여 선대바위라 불리고, 선대바위 주위에는 코끼리가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코끼리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선대암과 코끼리바위를 지나면 동그란 얼굴에 맑은 눈이 귀여운 점박이물범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331호이자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 두무진     


두무진의 암벽에는 해국(海菊)이 자생하고 있다. 옛날 두무진 바닷가에 금실 좋은 부부가 한 명의 딸과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떠났다. 남편이 떠나고 다음 날부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딸을 데리고 두무진 갯바위 위에서 바다를 향해 바라보면서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그만 높은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게 되고 말았다. 바람과 파도로 잠시 대청도에 피항 해 있던 남편이 돌아왔을 때  아내와 딸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이듬해 바다로 가는 길목 바위에 두 송이의 파란 꽃이 자신을 바라보고 웃고 있는 꽃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남편은 꽃을 들여다보니 아내와 딸의 얼굴이 보였다. 남편은 바다를 향해 자신을 기다리는 꽃이라 하여 ’해국‘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지금 매년 가을이면 파란 설상화와 노란 관상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바다를 향해 어부의 시름을 달래주고 있다.
 
▲ 사곶 사빈     


두무진에서 천연비행장이라 일컫는 ’사곶 사빈’으로 향했다.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사곶 사빈은 규암이 파쇄된 미세모래사장이다. 길이가 약 3km라고 하니 비행기가 충분히 미끄러지며 착륙할 수 있는 해변이다. 바닷가에 안개가 끼면 앞과 끝을 알 수 없는 사막이 아닐까 하는 착각도 한다. 바닥이 다져있는 듯 단단하여 6·25전쟁 이후 수송기 이착륙 장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요즈음은 관광객들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 자동차가 사빈을 달리는 것을 보여주며 증명케 한다. 이곳에 쌓이는 모래는 썰물보다 밀물의 영향을 더 받아 외부로부터 계속 세립질 모래가 축적되고 있다. 세립질은 석영이 매우 단단해 마모되지 않는 단결정질과 해수의 접착력까지 더해져 해빈(海濱)이 더욱 단단해진다. 이러한 사빈은 이탈리아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 두 곳밖에 없는 특이 지형·지질이라고 한다.
 
▲ 사곶 사빈     


사곶 사빈 인근에 간척사업의 영향으로 점차 펄 갯벌로 변해가고 있다. 방조제 건설로 안쪽으로 드나들던 물길이 제방에 의해 막혀 앞바다의 조류가 바뀌어 버렸다. 그 영향으로 바다로 씻겨가던 퇴적물이 해변으로 밀려오는 바람에 모래의 결집력이 약해지고 있으며, 간척사업으로 만든 땅은 황무지로 방치되고 농업용수 공급용 담수호도 쓸모없는 상태가 되었다. 모랫바닥에 깊이 팬 자동차 바퀴 자국은 모래의 결집력이 약해져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사빈 바닥에 검은 층이 보이고 악취가 나고 있어 관리에 많은 문제가 지적될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빈 모래를 사용하기 위해 주민들이 모래를 퍼 나르는 자국도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썩은 백령호를 막고 있는 제방을 트고 다시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한다. 연간척을 통해 사빈을 복원하고 사빈에서 주민들의 소득원을 추진하거나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해 지금처럼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지금의 사빈을 살리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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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26 [10:02]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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