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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속리산 법주사의 문화재 (2)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9/02/08 [09:54]

문화재 : 보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소재지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379, 법주사 (사내리)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한국 사찰건축물 중에 가장 높은 건물이 앞을 막는다. 법주사의 대표적 건축물인 팔상전(捌相殿)이다. 이 건물은 정신과 마음, 손이 일체가 되어 비로소 고도의 기술이 담긴 영적 건축물로 태어난 목탑이다. 이전에 신라의 황룡사에 목탑이 있었고, 화순 쌍봉사에 목탑이 있었으나 모두 화마가 삼켜버렸다. 

 

▲ 법주사 팔상전    



법주사의 팔상전 앞에서 목탑일까? 사찰 전각일까? 하는 의견이 분분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이것이 탑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관람객은 그렇게 많지 않다. 탑이라고 일컬어 왔기 때문에 목탑이라고 단순하게 이야기하거나, 우리나라 불탑이 석탑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팔상전은 탑이 아니고 목조 건축물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팔상전이 목탑이냐 전각이냐의 구분은 가장 쉽게 상륜부를 보면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각은 용마루가 있지만, 탑의 꼭대기에는 상륜부가 있어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연, 용차, 보주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탑이라고 한다.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정자를 보면 사모정이나 육모정, 팔각정의 꼭대기에도 탑의 상륜부처럼 우뚝 솟아 있는 것은 절병통을 올려놓은 것이 탑과는 다르다.


우리나라에 불교문화의 일부분인 탑은 삼국시대인 4세기부터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의 야심적인 건축물인 황룡사 9층 탑은 백제인이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형체가 남아 있지 않으며, 본래의 한국 목탑에 대한 연구가 한계의 길을 걷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이 5층 지붕의 정방형인 법주사 팔상전이지만, 팔상전은 1596년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26년까지 22년에 걸친 공사 끝에 다시 복원하였다. 탑에서 발견된 탑지와 묵서는 서로 다른 시기를 알려주는데 묵서의 천계 6년인 1626년에 상량하였다는 기록보다 앞서 탑지는 을사년(1605) 3월에 대고주를 세웠다고 한다. 21년의 시차가 보인다. 이것은 1605년에 시작하여 1626년에 마무리한 것으로 보면 된다. 장기간에 걸쳐 완성한 이유는 당시 경제적 악화로 인해 지지부진하게 간헐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해석되는데 5층탑의 구조 수법이 층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지금의 팔상전은 1968년에 해체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법주사 팔상전    



팔상전이란 의미는 문자 그대로 여덟 폭의 그림이 있는 법전이란 뜻으로, 석가모니의 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를 여덟 개의 장면을 나누어 설명한 그림인 팔상이 모셔진 곳이다. 팔상전에서는 동쪽의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라고 하는 입태(入胎)와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라고 하는 탄생을 시작으로 남쪽과 서쪽, 북쪽으로 회전하면서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의 입멸(入滅)에 이르기까지 8폭의 탱화를 배치했다. 사천주에 의해 형성된 네 면의 벽에 각각 2폭씩의 탱화와 불상 한 존씩을 배치하여 우요삼잡(右繞三團) 할 수 있는 예불공간으로 꾸며진 것이 팔상전의 공간구성이다. 대부분 사찰의 팔상전에 모셔진 팔상도는 불단을 향해 평면적으로 나열되어 한 번에 전체를 볼 수 있지만, 법주사의 팔상전은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한가운데 정방형의 네 벽을 돌아가면서 각 벽에 두 폭씩을 배치하였기 때문에 벽면을 보며 돌아가지 않으면 전체를 볼 수 없다.


팔상도의 8폭을 전부 보기 위해서는 팔상전 내의 정방형의 안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이를 따라 돌다 보면 결국 가운데 벽 심초석에 봉안된 불사리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탑돌이를 하게 되는 셈이다. 심초석의 불사리는 1968년 팔상전 해체 수리할 당시 심주 밑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이곳에 불사리를 봉안한 장소임을 확인하였다. <삼국유사> 권5 ‘월명사도솔가(月明師兜率歌)’ 조의 ‘동입내원탑중이은(童入內院塔中而隱)’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동자가 탑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내용에서 팔상전은 탑이면서 내부에 예배의 공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현재 지상에는 상층의 기단이 있으며, 지면에는 하층의 기단 상면이 보인다. 원래는 상층 및 하층의 2단으로 된 이성기단(二成基壇)이다. 지상에 서 있는 상성기단(上成基壇)은 4단의 장대석이 수평으로 쌓여 있으며, 제l단과 제4단은 약간 앞으로 돌출돼 있다. 팔상전의 기단은 가공석으로 하여 층급 쌓기를 한 와장대식(臥長臺式)으로 된 중층기단이다.


현존하는 팔상전의 총 높이는 22.7m, 평면은 8m의 정방형으로, 전체적인 기단의 형태는 정사각형의 돌을 맞춰 높이 1.34m의 기단부를 형성하고, 그 위에 목조로 5층 탑신부를 짜고, 가장 위쪽에는 철재로 제작된 상륜부를 두고 있다. 기단은 다듬은 돌로 낮게 2단을 쌓고 그 위에 갑석을 얹고 각 면의 가운데에 돌계단을 두었다.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의 문을 내어 출입을 자유롭게 하였으며, 전체 높이에 달하는 중심기둥을 세웠다. 보를 위에 앉은 4층 높이의 내부를 3층까지 올라가는 외부 틀 등의 여러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틀 위에는 틀이 받치고 있는 처마가 다섯 층의 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목탑에서 볼 수 있는 노대는 생략되고 창문이 있다.

 

▲ 법주사 팔상전 공포짜임    



팔상전의 공포형식은 l층부터 4층까지는 주심포식, 5층은 다포식으로 되어 있다. 첨차는 상단부 1층에서 5층까지 모두 직선으로 처리되고, 하단부는 1층에서는 크고 작은 두 개의 S자가 연결된 쌍 S자형이고, 2층에서 5층까지는 직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외부의 제공 형태는 l층에는 앙서로 처리된 초제공과 이제공으로 처리하고, 그 상부 보머리가 운공형상이다. 2층에는 앙서로 처리된 초제공, 이제공과 수서로 처리된 삼제공으로 처리하였다. 그 상부는 보머리가 운공형상으로 처리되어 있다. 3층은 앙서로 처리된 초제공, 이제공 및 수서로 처리된 삼제공으로 되어 있고, 그 상부 보머리가 운공형상으로 처리되었다. 삼제공의 수서 형상은 변형되어 운공형상과 비슷하다. 4층은 앙서로 처리된 초제공, 이제공, 삼제공 및 수서로 처리된 사제공으로 되어 있고, 그 상부는 보머리가 운공형상으로 처리되어 있다. 4층의 앙서 및 수서의 형상은 운공과 비슷하다. 5층에서는 교두형으로 처리된 초제공, 이제공, 삼제공 및 이분두로 처리된 사제공 및 오제공으로 처리되었다.

 

▲ 법주사 팔상전    



소로(小累)의 형상은 각 층 모두 굽단면이 직선으로 되어 있다. 팔상전 공포형식의 특성은 1층에서 4층까지 주심포식이기는 하나 다포식의 기법이며, 첨차 형상은 오히려 장식화된 익공계에 가깝다. 그러나 5층 첨차는 교두형 첨차로 되어 있어 조선 중기에서 볼 수 있는 특성이며, l층에서 4층까지는 조선 후기의 특성이 강하다. 이는 팔상전이 조선 중기에 중창되었으나 후기에 수차례 중수가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 법주사 팔상전    



팔상전 상륜 높이는 3.9m이며 최하단에 석재의 이중 노반이 있고, 그 상부에 복발이 간략하게 조성되어 있다. 상부 찰주에는 5륜이 설치되어 있고, 찰주의 상단은 보주가 설치되어 있다. 찰주의 상단으로부터 쇠줄을 늘여서, 5층의 네 모서리 추녀 끝을 철재로서 돌출시켜 이와 연결하고 있다. 4개의 쇠줄 중간에는 각각 풍경을 달아 두었다.


평면형식은 초층과 2층에서는 5칸×5칸, 3층, 4층에서는 3칸×3칸, 5층에서는 2칸×2칸으로 되어 있다. 그 평면은 중심에 심주가 설치되고 그 주변에 사천주가 설치되어 있다. 사천주로 연결되는 네 변은 간벽으로 막았다. 그 바깥은 불단이 설치되어 있다. 사천주에서 바깥으로 내진고주(內陣高柱)가 각 변 4개씩 12개가 설치되었으며, 여기서 바깥으로 평주가 설치되어 있다. 평주는 각 면에 6개씩 총 20개가 설치되어 있다.

 

▲ 법주사 팔상전    



팔상전의 내부 벽체는 l 층에서 3층까지만 보이며 광창과 포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l층에서는 공포 사이로 화반이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의 포벽에는 매(梅), 난(蘭), 국(菊), 죽(竹) 등 사군자가 그려져 있다. 2층 이상에서는 공포대 사이에 화반이 없이 포벽 만으로 되어 있고, 2층. 3층의 포벽에는 부처의 전생 이야기인 본생담(本生譚)이 그려져 있다. 팔상전의 3층의 천장은 현재는 일종의 격자천장으로 되어 있다. 격자 사이에는 연꽃, 국화를 그렸다. 1층. 2층에서는 빗천장으로 되어 연목(椽木)이 노출되어 있다.

 

▲ 법주사 팔상전    



팔상전의 추녀 끝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각 층의 지붕 사래 끝에 토수를 끼워야 할 곳에 평면 사래기와로 마감하였는데, 기와 표면에는 용면(龍面)을 선으로 정교하게 표현하였다. 사찰에서의 용면은 물과 관련이 깊은 기와, 단청, 목조각 등으로 장식하여 화마(火魔)를 막는 벽사의 기능을 갖기 위한 것이다. 2층 추녀 끝에 용의 상과 난쟁이 조각상이 공포 위에 올려져 있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추녀 밑의 인물상처럼 반나체의 모습, 추녀 밑, 쪼그리고 앉아 두 필로 추녀를 떠받치고 있는 점이 같은 점이다. 이 작은 인물상들은 귀면처럼 단순한 벽사상이 아니라 불교 외호신중의 하나로서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양함과 동시에 불자와 불전을 수호하는 기능을 가진 존재이다. 네 곳의 추녀 중 세 곳에 난쟁이 상을, 한 곳에 용의 형상을 조각해 놓았다. 난쟁이 상은 공포를 구성하는 수서(垂舌) 위 두 개의 연꽃 봉오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두 팔과 머리로 연잎으로 추녀를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 한 난쟁이는 청룡의 몸통을 물고 또 하나의 난쟁이는 황룡의 몸통을 물고 있다. 눈은 왕방울 눈이고, 나선형으로 표현된 눈썹과 수염은 짙은 수염을 하고 있다.

 

▲ 법주사 팔상전    



팔상전은 561개의 기둥을 들여 5층 목탑을 완성하였으며, 3층의 목탑을 완성해도 될 것 같았지만, 왜 5층의 목탑을 만들었을까 생각한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음양오행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땅은 음이고 건물은 양이라 하였다. 땅 위에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홀수인 양수로 층수를 정해야 했다. 즉, 팔상전의 5층은 완성의 숫자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팔상전의 층수는 완성과 조화를 상징하는데 깊은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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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08 [09:54]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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