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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여성의 사회 진츨 등 여권신장에 앞장서
 
은동기 기자 기사입력  2019/06/11 [20:07]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 고 이희호 여사 유언 

 

[한국NGO신문] 은동기 기자 =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정치인이며 사회활동가였던 이희호 여사(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가 10일 밤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 여사는 노환으로 인해 올 초부터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에 안치된 고 이희호 여사 영정.  ©SBS 화면 캡처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날 자정이 가까운 시각 "이희호 이사장님이 6월 10일 오후 11시37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소천하셨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공교롭게도 6·10 민주항쟁 기념일에, 또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성취했던 6·15 평양 남북정상회담일을 닷새 앞둔 시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지 10년 만에 별세했다. 

 

이 여사의 분향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되었,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다. 발인은 14일 오전 6시이며, 장례예배는 이날 오전 7시 고인이 평소 다녔던 신촌 창천교회에서 열린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진행되며 이 여사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고(故) 이희호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는 위원장 3명에 위원 수백 명의 규모로 꾸려질 예정이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 민주평화당 권노갑 고문이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다고 밝혔다. 5개 정당 대표들은 고문으로 참여한다.

 

해외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은 추모 글을 통해 고 이 여사의 헌신적 삶을 회고하면서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고 말하고, “여사님은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시대의 대표적 신앙인이며 민주주의자였다”고 강조했다.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유언

 

▲  김대중평화센터 김성재 상임이사가 고 이희호 여사의 유언장을 공개하고 있다.    © SBS 화면 캡처

 

김대중평화센터 김성재 상임이사는 10일 오전, 이 여사가 생전에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세 아들의 동의를 받아 작성한 유언장을 공개했다.

 

김 상임이사는 별세한 고 이희호 여사가 유언을 통해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이 여사는 또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고 유언했다.

 

이 여사는 유언의 집행에 대한 책임을 김성재 상임이사에게 부여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김대중평화센터 사업을 잘 이어가 달라"고 당부했다.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은 김 상임이사는 발표문에서 “이 여사님의 장례는 유족, 관련단체들과 의논해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족들이 모두 임종을 지키면서 성경을 읽어드리고 기도하고 찬송을 부를 때 여사님도 함께 찬송을 부르시며 편히 소천하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여사님께서는 평생 어려운 사람들,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늘 함께 하시고,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서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한 일을 계속 하시다가 소천하셨다”고 강조했다.

 

군사독재 정권 아래 김 전 대통령과 동지로 함께 민주화 투쟁

 

이 여사는 대표적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다 1962년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그는 단순한 배우자를 넘어 군사독재 정권 아래 정치적 동지로서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싸우며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했다.

 

김 전 대통령이 투옥됐을 때 옥바라지를 했고 그의 구명운동에도 앞장섰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 여성의 공직진출 확대, 여성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 문호를 넓히는 등에도 힘썼다.

 

1922년 생인 이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램버스대학을 다닌 뒤 스칼렛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이 여사는 이후, 충남 예산 삽교공립국민학교 부설 여자청년연성소 지도원, 이화여자대학교 사회사업과 강사, 대한 YMCA연합회 총무 등 사회생활을 한 바 있다.

 

이 여사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통해 한국사회에 여권이 신장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여사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1961~1970), 여성문제연구회 회장(1964~1970), 범태평양 동남아시아 여성연합회 한국지회 부회장1968~1972),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 명예이사장(1999~2002), 한국여성재단 명예이사장(2000~2002),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명예이사장(2001~2002), 김대중평화센터 고문(2007~2009.9),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2009.9) 등을 역임하며 한국사회에 여성운동이 성장하는 한 획을 그었다.  

 

1997년 12월에 김대중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1998년 2월 25일부터 2003년 2월 24일까지 청와대에서 생활했다. 

 

<저서>
나의 사랑, 나의 조국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
옥중서신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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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11 [20:07]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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